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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안개
                                                                                                                        손 정 모

   광막한 갯벌 그 어디서도 소음이라곤 들리지 않았다. 자욱한 물안개로 뒤덮인 백사장만이 널브러져 누웠을 뿐. 불타는 낙조에 휩쓸려, 바다는 황금빛 물고기 떼처럼 파드득거리며 치솟고 있었다. 석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선하(鮮霞)는 해변을 따라 허청거리고 있었다. 새벽에 선하에 대해 뭐라고 속살거리던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였다. 내겐 대뜸 선하가 위도의 해변을 찾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막하게 펼쳐진 백사장 길을 선하가 서성거리리라고는 여인은 아마도 짐작조차 못할 터였다. 너무나 고단했던 일과 탓인지 자꾸만 현기증이 일었다. 새벽에 전화로, 선하가 또 떠났다면서 훌쩍거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도 그랬다. 망망대해의 일엽편주와도 같은 신세라, 선하가 갈 만한 데는 좀체 없으리라면서 여인은 훌쩍거렸다. 혹시 선하가 위도를 찾는다면 제발 연락이나 좀 바란다는, 여인의 애절한 하소연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이내 잠의 나락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탁 트인 팔월 중순의 바다 위로 눈부신 태양이 막 치솟고 있었다. 나는 위도의 산꼭대기에 올라 위도의 아침 전경을 굽어보고 있었다. 전북 변산의 격포항 서쪽으로 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상의 섬. 섬의 남쪽에는 송이도와 칠산도가, 서쪽에는 낙조로 유명한 왕등도가 그림처럼 수평선에서 남실대고 있었다. 바다는 선홍빛으로 타는 아침놀에 취한 채, 끝없이 나부대고 있었다. 문득 심구미의 광막한 갯벌이 떠올랐다. 석양에 하얀 모래사장을 정처 없이 서성거릴 선하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라고는 위도를 제외한 바다의 수면 정도가 고작이었다. 위도의 해변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한결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어쩌면 선하의 발길이 바다로 향할지도 모른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여인의 목소리였다. 자칫하면 금세 울음으로 변할 듯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어느덧 해는 반공으로 껑충 치솟아 있었다. 흘낏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열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심구미 해변의 동백 숲을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자꾸만 강한 예감 같은 것이 나의 뇌리를 압박해 왔다. 새벽에 여인의 전화를 받으면서부터 극도로 혼란스러워진 마음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 보았지만, 도무지 일이라곤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산봉우리에 올라 위도를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른 후였다. 아무래도 선하는 석양 무렵에 해변을 찾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공허할 때면, 선하는 곧잘 심구미의 해변을 찾아 석양에 취하곤 했기 때문이다.


  선하가 위도를 찾던 첫날이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흩날리던 지난 칠월 초순경의 석양 무렵이었다. 그 날의 나는 석양의 햇살을 받으며 고장난 어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멍 뚫린 그물을 들여다보며 과거의 추억을 야금야금 건져 올리고 있었을 터였다. 그것에도 싫증을 느꼈다면, 산화된 선체의 벽면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흘리고 있었을 터였다. 분명한 것은 바다를 휩쓸던 해풍과 자욱하게 드리워졌던 물안개뿐이었다. 물안개로 자욱하게 뒤덮인 수면을 가르며, 저음의 뱃고동이 따스한 체온처럼 밀려들던 때였다. 나는 어구들을 챙겨 들며, 유람선으로부터 선착장에 내닫는 몇몇의 여행객들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금세 또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려 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심해 속을 표류하는 고장난 잠수함의 함장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나는 시야를 차단당한 난파함의 함장이란 말이다, 함장 ! 나는 연신 중얼거리며 도리질을 해 대었다. 그새 안개는 아스라이 밀려나 버리고 해변 위에 덩그렇게 누워 있는 앙상한 선체. 뱃고동의 저음이 살며시 가라앉을 무렵, 경쾌한 신발 소리가 귓전을 울려 왔다. 나는 피로에 지쳐, 선박 부근의 바위에 드러누운 채 눈을 감았다. 점차 내게로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에 신경이 쓰여, 슬며시 눈을 떠 보았다. 모래바람이 가볍게 일고 있는 백사장을 가로지르며 두 여인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산뜻한 차림새의 두 여인이 다가와서는 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십 중반의 여인은 양소혜(陽昭惠)라고 했고, 스물 다섯의 여인은 자신을 설선하(薛鮮霞)라고 밝혔다. 여인들은 민박집이 다 찼다며, 혹시 사찰의 객방(客房)이라도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했다. 여인들은 지리를 잘 모른다며 여차하면 매달려 애원이라도 할 듯한 기색이었다. 결국 나는 쪽박금의 해변 길을 걸어 산등성이를 지나서, 여인들을 내원암으로 데려갔다. 그 때부터 두 여인은 내원암의 장기 투숙자가 되어, 위도의 절경을 감상하곤 했었다.


  이제 태양은 중천에 치솟아 사방으로 폭염을 내리쏟고 있었다. 나는 더위도 식힐 겸, 심구미의 동백 숲을 찾아 반석 위에 몸을 눕혔다. 때마침 바다를 건너 온 바람이 동백 숲을 간지럽히며, 빛살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반석에 몸을 눕히자마자 슬그머니 선하에 대한 상념이 밀려들었다.

  석양 무렵이면, 선하는 곧잘 나와 함께 낚시질을 하곤 했다. 나보다 두 살 밑인 선하는 확실히 첫눈에 혹할 만큼의 빼어난 미모였다. 중키에 늘씬한 각선미까지 갖춰, 볼 때마다 가슴이 뒤설렐 정도였다. 선하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바닷바람에 나부끼며,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들려주곤 했다. 선하는 체대 무용학과를 졸업한 뒤로 무용수를 꿈꾸는 여인이었다. 연두색의 민소매 티에 흰색 핫팬츠 차림이 선하가 즐겨 입는 복색(服色)이었다. 날아갈 듯이 산뜻한, 선하의 차림새를 볼 적마다 나는 그녀의 관능미에 매혹되는 느낌이었다. 

  지난겨울에는 내설악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지만, 거기에서 뭘 했는지는 묻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 자체가 지고지순한 믿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때가 되면 여행 중의 경험을 살려, 창극 무도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여태껏 그녀가 해답을 얻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말이다. 반드시 그녀는 춤의 진수를 터득해 내겠다면서 결의가 대단했다. 황학루(黃鶴樓)의 학 그림처럼, 어딘가에는 춤의 진수가 전설처럼 살아 있으리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일단은 자꾸만 신념을 가져 보는 거죠. 설령 성취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말이에요. 세상이 답답해질수록 나 자신을 추스르며, 맑은 숨결을 토해 내 보는 거죠. 사람들과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이론의 굴레에서만 겉돌지 말고, 실제로 부딪혀 보는 거예요, 알겠죠?”

  선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점차 그녀의 여성다운 매력에 몸을 떨곤 했다. 선하의 눈빛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광채 영롱한 하늘의 별빛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그윽한 눈빛으로 선하를 바라보곤 했다. 그 때마다 바다 속의 비릿한 해초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곤 했다. 해초 냄새로 휘감긴 나의 전신을 그녀는 눈빛을 빛내며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전신을 휩쓰는 아뜩한 현기증에 곧잘 몸살을 앓곤 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선 연방 물보라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때때로 하얀 포말(泡沫)을 가로지르며, 햇살이 허공에서 현란한 곡예를 넘곤 했다. 나는 계속하여 동백 숲의 반석 위에 몸을 눕힌 채, 바다를 굽어보았다. 동백 숲 위로 치솟는 구름장을 보면서, 나는 점차 상념의 물결에 휩쓸려 들었다.

  “상민 씨, 제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뛰어든 세계가 뭔지 아세요? 바로 ‘춤사위’라는 동아리였어요. 동아리의 회원은 모두 열 명이었는데요, 그 중 절반이 남자들이었어요. 동아리의 회장이 누군 줄 아세요? 바로 저를 자나 깨나 달달 볶는 그 여자, 아시죠? 바로 서른 살의 허청숙(許淸淑)이라는 독신녀예요.”

  틈나는 대로, 선하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과거사를 조금씩 풀어놓곤 했다. 아닌게아니라, 선하의 말대로 허청숙은 보스의 기질이 농후한 여인이었다. 그 날 위도에서, 선하가 여인에게 멱살을 잡히다시피 끌려가지만 않았더라도 말이다. 선하는 어쩌면 목적을 이룰 수도 있었으리라. 선하는 여인이 찾아오기 전에 춤의 진수를 터득했어야만 옳았다. 여인이 그녀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선하에게 몇 차례나 알려주었음에도 말이다. 선하는 변변한 대책 하나 세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더더욱 여드레 전의 선하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편승하여, 여인은 고작 사흘간을 머물면서 그 난리를 치고 떠나간 거였다.


  여전히 나는 반석에 드러누운 채, 물고기의 비늘처럼 파드득거리는 바다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에 들린 여인의 흐느낌 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가슴을 옥죄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여드레 전의 그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인이 내원암에 동숙하던 첫날이었다. 여인이 객방에 들면서부터 서서히 객방의 분위기는 뒤틀려 가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고함 소리가 들려 주지승(住持僧)이 달려가 보았더니,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는 거였다. 여인은 팬티만 걸친 채, 선하를 노려보며 막걸리를 사 오라고 된통 호통을 쳐대었다. 그 서슬에 합숙자인 도예가 양소혜까지도 안색이 홱 변할 지경이었다.

  그 날 저녁 무렵이었다. 심부름을 나서서 오솔길을 타 내려오면서, 선하는 내게 핸드폰으로 만나자며 도움을 청했다. 막걸리 심부름을 나섰던 선하는 나의 집으로 피신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리하여, 선하는 결국 나의 집으로 피신해 버리고 말았다. 여인의 흉포한 성질에 진저리를 친다며, 선하는 제발 하룻밤만 재워 달라며 매달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바였지만 말이다. 여인은 이틀째 아침에는 주지한테까지 통닭을 사 내라며 마구 야료를 부렸다. 게다가 이틀째 밤에는 무단 이탈죄를 다스린다며, 선하를 잠도 재우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전에도 선하는 종종 나의 집에 놀러와서는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다. 폐농가를 수리하여 만든 나의 오두막집은 대나무로 둘러싸여, 제법 운치를 자아내곤 했었다. 나의 집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심구미의 남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심구미는 위도의 서쪽 해변에 형성된 소쿠리 모양의 만으로 형성된 지역 일대였다.

  선하의 청에 따라, 나는 선하를 두 채의 오두막집으로 된 나의 집으로 데려갔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서 남쪽에는 침실이, 북쪽에는 화실로 갖춰진 오두막집이 나의 집이었다. 선하는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탄성을 질러댔다.

  “어머나, 여기는 올 때마다 별천지네요. 그새 풍광이 이처럼 아름답게 변했군요. 저도 이런 데서 좀 살아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선하가 나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였다. 초저녁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더니만, 이내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 주위의 대나무들이 ‘휙휙’거리며 쓰러졌고, 세숫대야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폭우였다.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는 오두막집은 빗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폭우가 아니라도 이젠 암담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계속 오두막집에 눌러앉아 지낸다면, 끝내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묻혀 버리고 말리라. 나로 말하면 아직은 스물 일곱의, 미래가 있는 청년이다. 내 나이에 연인과의 사별(死別)로 인하여 이다지도 인생을 버겁게 여긴다면 말이다. 더 큰 좌절이 기다릴 수도 있는 미래는 어떻게 헤쳐 나갈 건가 말이다. 또다시 광풍이 일자, 소금기를 머금은 포말들이 유리를 박살이라도 낼 듯이 유리창으로 휘몰아쳤다. 아, 이러다간 지레 질식할지도 모를 일이잖는가? 대숲을 휘젓는 포말들을 바라보자, 어느새 나의 집은 좌초 직전의 표류선(漂流船)인 양 여겨졌다. 이대로 파도에 휩쓸리다가는 종국에는 선체가 암초에 부딪혀 폭발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게 남겨진 최후의 보금자리인 선체의 폭발이라! 폭발을 생각하자마자, 나는 ‘쩡’하고 머리가 갈라지면서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초조감으로 인해, 유리창에 손바닥을 댄 채 나는 내심으로 떨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어느새 나의 땀방울만 같이 여겨져서,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집 주변의 대나무 숲은 강풍에 휩쓸려, 허리를 푹 꺾은 채 나부대고 있었다. 확실히 근래에는 보지 못했던 폭풍우였다. 느닷없는 여행객들의 소란스런 말소리가 집 근처에까지 들려왔다. 그들은 폭우가 내리기 조금 전에 유람선에서 내린 여행객들인지도 몰랐다. 겨우 스물 일곱에 상심을 극복하지 못하여 절해고도에 웅크리고 앉은 나는 뭐란 말인가? 바깥은 여전히 장대 같은 빗줄기와 함께 광풍이 수풀을 휘젓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밤새 쏟아지다가는 나는 위도와 함께 물 속에 가라앉고 말 터였다. 문득 가라앉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다. 나의 의식은 어느새 또 다른 과거의 터널 속으로 치닫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일시에 여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였다. 친척 하나 없이 혼자서 생계를 이끌고 나가던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의 생계가 너무나 암담하여, 독학을 하겠다며 내가 고향인 만경 평야를 떠나던 날이었다. 석양이 지평선 위에 걸려 핏빛으로 타오르던 성황당 마루에서였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나의 얼굴을 놓치지 않을 듯 쓰다듬으면서, 외할머니는 신신당부를 했다.

  “얘야, 어떤 경우에도 사람한테는 보금자리가 있어야 하는기라. 보금자리가 없는 사람은 바다에서 떠도는 배처럼 비참한 법이니라.”

  성황당을 떠나는 순간부터 외할머니의 말은 나의 생애에 잠언으로 새겨졌다. 성황당을 내려서던 순간이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진정 몰랐었다. 언제든 그 날을 떠올리기만 하면, 회한이 끓어올라 금세 목이 메곤 했다.


  ‘후두둑’거리는 빗소리에 놀라, 나는 문득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나는 유리창에 손을 갖다 대고는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내다보았다. 나는 개펄 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듯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민 씨, 지금 뭐 하세요? 어느새 바깥이 제법 어두워졌네요. 불 켜요, 우리.”

  선하가 불을 켜라고 하다니? 나는 창의 우측 벽면에 있는 스위치를 찾아 더듬거렸다. 순간 ‘찰칵’하는 명료한 음향이 일었다. 금세 형광등에서 밝은 빛살이 흘러내리면서 어두움을 창 밖 아스라이 내몰고 있었다.


  이 때였다. 환청인지도 모르게 나는 암흑 속에서 짤따란 비명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이 때 형광등의 불빛과 겹쳐지면서, 탐조등(探照燈)의 불빛이 머릿속에 선히 떠올랐다. 탐조등의 불빛이 연상되자마자, 작년 8월의 한탄강에서 있었던 래프팅(rafting)의 사고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일상적인 프로그램대로 잠시 보트를 떠나, 소(沼)의 중심부에서 물가의 모래톱으로 헤엄쳐 가는 도중이었다. 헤엄을 치느라고 버둥거리던 사이에, 혜경(惠敬)의 구명 조끼의 끈이 풀려 버린 거였다. 구명 조끼만 둥실 치솟더니, 혜경은 금세 물 속으로 실종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탐조등의 불빛이 터져 나오면서, 구명 조교들이 연달아 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말이다. 물 속 바위에 끼어 버둥거리던, 나의 연인인 혜경은 끝내 회생되지 못하였다. 그 날의 분노와 슬픔과 절망감이란!


  어느새 가슴에 통증이 일며, 온몸에 경련이 일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형광등의 불빛을 쏘아보았다. 호들갑을 떨며 지나간 여행객들의 눈엔 형광등의 불빛이 보이기는 보였을까? 아마도 그들은 물에 젖은 몸을 말리러, 경황없이 어디론가로 몰려갔을 터였다. 도대체 폭우 속에서도 유람선은 왜 바다를 달리는 걸까? 대부분의 선박들이 그렇듯, 해변의 물굽이를 빠져나가기에도 급급했을 터였다. 오가는 유람선들은 여전히 오두막집의 탐조등의 불빛을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허망할 데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의 드센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휘이잉’ 소리를 내며, 또 한 차례 세숫대야가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오로지 굵다란 빗줄기뿐이었다.


  바로 이 때였다. 빗물에 옷이 찰싹 달라붙은 남녀가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남자는 50대 초반의 사내였고, 여자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인이었다. 척하니 첫눈에 불륜의 짝이라는 느낌이 와 닿았다.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은 빨간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지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

  “아저씨, 너무나 격렬한 폭우라, 도저히 앞이 안 보여요. 혹시 잠시 쉬어 갈 만한 방이 없나요?”

  나는 대번에 거절하여 내쫓고 싶었지만, 하도 심한 폭우라 잠시 허용해 주기로 했다. 나는 화실에서 나와, 마당을 사이에 둔 맞은 편의 나의 침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돈은 필요 없구요. 비가 그칠 때까지만 쉬었다 가세요.”

  그리고는, 나는 이내 화실로 돌아가서 선하와 마주앉았다. 설록차를 끓여 서로 찻잔을 나누면서, 오디오를 틀어 비발디의 사계를 듣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유리창을 두드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냉기로 입술까지 파래진 여자는 겸연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 자꾸만 성가시게 해서 미안한데요. 세숫대야하고 빨래 비누 한 개만 잠시 좀 빌릴게요. 수돗가에 가 봤는데, 세숫대야가 안 보이더군요. 옷이 죄다 젖었기에, 대충 헹궈서 물기라도 좀 짤까 해서요.”

  나는 창문을 열고는 마당 귀퉁이에 날아가 박힌 세숫대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세숫대야구요, 비누는 저기 물통 뒤에 있는데, 보이죠? 가스 보일러를 틀어 놓았거든요. 곧 훈기가 있을 거예요.”

  여자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냉기로 파래진 여자의 입술을 보는 순간이었다. 문득 뇌리에는 열흘 전 중년 여인의 파리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날도 나는 낚시에 취해 위도의 남쪽 갯바위에 매달려 밤을 지새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헌데, 남서쪽 바위 벼랑 위로부터 느닷없는 여인의 곡성이 흘러나왔다. 불빛이라곤 전혀 없는 캄캄한 바위 벼랑 위에서였다.

  사십 후반의 산발한 여인이 속치마만 걸친 채, 맨발로 바다를 굽어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곧장 바다를 향해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일단은 생명부터 구하고 볼 일이라 생각했다. 허겁지겁 달려들어 여인을 껴안아 벼랑 아래로 내려서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바지 앞섶이 뜨뜻해져 오면서 물기가 느껴졌다.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여인이 오줌을 지린 거였다.

  비를 그을 수 있게 폭 팬 벼랑 밑의 바위 틈새를 찾아 들어섰다. 여인은 바다로 뛰어내리게 놔두든지 아니면 그녀의 말을 들어달라고 보챘다. 그러면서, 여인은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나의 바지를 벗겨 내리기 시작했다. 아찔한 절망감과 고뇌에 휩싸여, 나는 창졸간에 여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은 몇 차례나 몸을 바르르 떨어 대면서, 나의 알몸을 하염없이 어루더듬곤 했다. 여인 몰래 남편이 재산을 처분하여, 애첩과 함께 해외로 잠적해 버렸다는 거였다. 자식마저 없는 몸이기에,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다며 여인은 훌쩍거렸다. 느닷없이 펑하고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마디로 착잡하고도 난감한 밤이었다.

  가까스로 여인을 달래어 마을로 돌려보내고 나니,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돌아서는 발걸음마다 여인의 시린 한이 온통 유리 파편처럼 박혀 드는 느낌이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어 젖힌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얼어붙는 느낌에 휩싸였다. 어둑어둑한 방안에는 젊은 여인이 우두커니 넋을 잃은 채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다름 아닌 선하였다. 내가 불을 켜고 그녀를 바라볼 때까지도 선하는 여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선하의 주위에는 마시다가 그만둔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선하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 실려 파란 색채로 일렁이고 있었다. 선하가 밤중에 나의 집에 머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여, 대화라도 좀 할까하여 왔었어요. 그랬더니, 방문은 열린 채였고, 댁은 밤 낚시를 가고 없더군요. 상민 씨, 저는 요즘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나가야 할 길은 막막하고, 손에 잡히는 것은 끓어오르는 설움뿐이니 이를 어쩌면 좋지요? 그리하여, 황량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어서 그만 이대로 …….”

  “그럼, 미리 전화라도 주셨으면 제가 기다리거나 마중을 나갔죠.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이처럼 미안할 수가 없네요.”

  “괜찮아요. 그냥 오고 싶을 때 훌쩍 오고 싶었을 뿐이에요.”

  문득 나의 눈과 선하의 동공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쌓였던 설움이 파르스름한 빛살이 되어 흩날리면서, 선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흘렀다. 덩달아 나도 가슴이 하얗게 증발되는 느낌에 휩싸이면서, 선하를 나의 침실에 눕혔다. 나는 선하에게 이불을 조심스레 덮어준 뒤에, 잘 자라는 인사말을 남기고는 일어섰다. 그런 뒤에, 나는 마당 건너편의 화실로 내려가 잠을 청했다. 회상컨대, 그 밤 내내 선하의 잠꼬대 소리가 나의 귓전에 파도처럼 밀려들곤 했었다.


  어느새 마당에는 황톳물이 굽이치면서 밀려들었다가는 대밭 속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선하는 스무 평가량의 화실에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더니,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상민 씨는 이 많은 그림을 이 섬에서만 다 그렸나요? 주로 위도의 풍경과 바다를 담은 그림들이네요. 그리고, 저기 저 누드화의 모델은 누구세요? 설마 혜경 씨는 아니시죠? 이 섬 마을에 사는 아가씨라구요? 너무나 예쁘게 그려졌기에, 여자인 저도 가슴이 설렐 정도예요.”

  선하는 찻잔을 살짝 입에 갖다 대면서, 말을 이었다.

  “H대 미대를 졸업하셨댔지요? 연인과 사별한 지가 거의 1년째라구요? 슬픔이 얼마나 컸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요. 그래도 그렇죠! 대관절 언제까지 이 섬 속에서 갇혀 살 건가요?”

  나는 대답 대신에, 선하의 얼굴을 그윽한 눈빛으로 들여다보았다. 첫눈에 가슴을 얼어붙게 만드는 매혹적인 얼굴의 여인. 오뚝한 콧날에, 초승달처럼 살짝 휘어진 눈썹. 별처럼 영롱한 눈동자에 귀티가 나는 매끄러운 피부. 나는 소리 없이 탄성을 토하며, 선하에게 맑은 미소를 실어 보냈다. 나의 마음을 읽었음일까? 선하도 이내 서글서글하고도 맑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차를 따라 주었다. 문득 찻잔의 수면에 선하의 맑은 눈빛이 실리면서부터, 나는 과거의 상념에 젖어들었다.


  선하와 알고 지낸 지 보름만의 일이었다. 그 날은 화필을 들고서도 끝내 그림을 시작해 보지도 못했던 날이기도 했다.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린 느낌이 들어, 자꾸만 참담해지려는 심사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오후에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부터 나는 자꾸만 바깥으로 내달리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해변에는 한낮인데도 해무(海霧)가 잔뜩 끼어, 도무지 지척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위도의 해변을 따라 허청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막 주저앉아 쉬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등뒤에서 나의 어깨를 짚으며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어머나, 여기는 웬 일이세요? 게다가 오늘은 전신에 기력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네요. 어때 저랑 같이 걷지 않을래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다름 아닌 선하였다. 선하는 틈나는 대로 섬의 둘레로 산책을 나서곤 했다. 그러다가 넋을 잃고 배회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거였다. 선하는 안마의 기술이 탁월한 여인이기도 했다. 선하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스포츠 안마사의 자격증을 지니고 있었다. 인적이라곤 없는 섬의 외진 북쪽 산록에서였다. 선하는 풀밭에 드러누운 나의 전신을 서서히 안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이 섬에 와서 알게 된, 인간적으로 가장 친숙한 여인이기도 했다. 아마도 한 시간 가량은 지났으리라. 선하는 나의 귓전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상민 씨! 요즘도 가슴이 텅 비고 가슴이 쓰라리세요? 마음이 공허해질 때면 언제든지 제게로 오세요. 포근히 풀어 드릴 테니까요.”

  나는 꽉 막혔던 가슴이 개운해질 때까지 선하의 안마를 받고는 했다. 그 날도 나는 안마를 받은 후에, 확실히 새로운 활력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 보답으로,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선하를 등에 엎고는 해변 길을 거닐었다.


  “아저씨, 아예 방 값을 드릴 테니까, 오늘 밤만 여기에서 묵으면 안 될까요? 아무래도 폭우가 멈출 것 같지가 않아요. 분명 아까 저녁은 먹었거든요. 헌데도 배가 좀 고파서요. 라면 있으면 세 개만 빌려 주실래요 ? 그리고, 냄비도 함께요. 고맙습니다, 아저씨.”

  여인은 브래지어와 목욕 타월만으로 살짝 몸을 가린 차림으로 내게 말했다. 사내는 발가벗고 누웠는지 기척이 없었고, 연거푸 여인만 드나들고 있었다.

  “이 보세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니까, 여기서 묵는 건 괜찮아요. 그렇지만, 여기는 개인 집이지 민박집이 아니거든요. 돈 얘기만 꺼내지 말고 조용히 쉬다가 가도록 하세요.”

  나는 야한 차림새의 여자로 인해, 격해지려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눌러 참고는 창문을 닫았다. 선하는 ‘위도 해변의 낙조’라는 나의 그림 앞에서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선하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그림에서 풍겨 오는 이미지로  가슴이 떨릴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하는 그녀가 몸담았던 동아리인 ‘춤사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아리의 회원들은 모두 대학 선후배들이었다. 회원들은 연극영화과를 위시하여, 무도학과, 체육학과 등으로 학과가 다들 달랐다. 완전한 이질 집단이 모여 하나의 동아리가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들 중에서도 유독 보스의 기질이 강했던 사람이 바로 회장을 맡은 여인이었다.

  동아리가 결성된 지 6개월쯤 지난 뒤였다. 동아리에서는 국내의 지명도가 높은 세 사람의 지도 교수를 선정했었다. 지도 교수들 중에서는 홍 교수가 단연 명성이 높았지만 말이다. 회원들은 그의 소문난 바람기를 염려하며, 지도 교수로 선정하는 데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다수결로 결정하여 홍 교수를 지도 교수로 받아들였다. 그런 뒤에 회원들은 수시로 교수들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곤 했다. 선하가 40대 중반의 홍 교수를 만나 춤사위에 대한 지도를 받은 지 2개월만이었다.

  때는 여름철이었고, 대기는 온통 눅눅하기만 했었다. 여주 교외의 홍 교수의 별장에 여인과 선하가 불려가 지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때마침 교수의 부인은 잠시 친정에 볼일이 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가고 없었다.

  “회장과 함께 아침부터 교습을 받느라고 두 시간 가량을 착실히 땀을 흘린 뒤였죠. 왜 그 때 홍 교수의 눈치를 못 읽었던지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적당히 핑계를 대어 회장은 보내 버리고 저만 남았을 때였죠. 목도 식힐 겸 시원한 양주를 마시자는 거였어요. 저는 체질적으로 술은 약한 편이거든요. 얼마 마시지도 못한 채, 취기로 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을 때였죠. 느닷없이 홍 교수의 손이 저의 블라우스를 벗기며 사타구니를 더듬어 내려오기 시작했죠.”

  선하는 그 때의 정경을 떠올리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 때서야 안 일이었지만, 교수는 이전부터 선하에게 흑심을 품어 왔던 모양이었다. 마침내 벼르고 벼르다가, 그 날을 기해 선하의 옷을 벗겼을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당장 무슨 일이든 일을 저지를 듯한 기분이었죠.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봐요. 그새 저는 교수의 바람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타는 듯한 창작의 열정과 바람기와는 미묘한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약처럼 성의 유희에 휘감겨 드는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점차 헤어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몸을 떨곤 했죠.”

  선하는 점차 자신의 영혼이 망가지고 있음을 느낀다며 진저리를 쳤다.


  창 밖에는 여전히 폭우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선하는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가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죠? 이제 밤 열 시가 넘었으니까, 촛불을 켜는 게 어때요?”

  나는 일어나 형광등을 끄고는, 촛불을 켰다. 환하던 방 안이 금세 은은한 불빛으로 전환되어 있었다. 겨울철의 양달의 담벼락처럼 따스하고도 포근한 분위기가 실내를 은은히 적셔 주었다. 마당 건너편의 침실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창 틈으로 새어 든 바람으로 인해, 촛불이 가볍게 일렁이고 있었다. 선하는 다소곳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상민 씨, 지금껏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말이에요. 제가 상민 씨랑 잠자리에 드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죠? 좋은 꿈꾸시구요. 저기 촛불은 제가 끌게요.”

  선하는 곧장 입으로 촛불을 꺼 버리고는 요 위에 반듯이 드러누웠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에, 조심스레 선하의 곁에 몸을 눕혔다. 또한 이불까지 함께 덮고는 잘 자라는 인사말을 남긴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창 밖은 여전히 ‘휙휙’거리는 광풍과 함께, 세찬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줄기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침실이 있는 오두막을 들여다보았다. 불륜의 남녀는 고맙다는 메모지만을 남긴 채 이미 떠나 버리고 없었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엔 선하와 함께 낚싯배를 타고 아침 바다를 갈랐다. 비 온 뒤라, 하늘은 한없이 맑았고, 바다는 한결 고운 청색으로 남실거리고 있었다. 우럭이 잘 잡히는, 위도 북쪽의 식도 부근의 해역에서 배를 정박시켰다. 연방 우럭을 낚아 올리면서, 선하와 나는 기나긴 대화를 나누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혜경의 상실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지난날을 슬퍼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음에랴? 이제 선하의 출현으로 내 마음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생각을 되풀이해 보았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나의 생각이 결코 우발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리라고 말이다. 일단 하려고 작정한 일에는 망설이지 않는 것이 나의 습성이었다. 이제 나는 선하에 대한 나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수평선을 향해 잠시 맑은 심호흡을 한 뒤에, 선하를 향해 말했다.

  “만약에 말이에요. 제가 선하 씨의 곁에서 영원히 머물 수는 없을까요?”

  선하는 우럭을 물칸에 담다가 말고, 허리를 펴면서 나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밝은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면서 그녀는 잠시 허청거렸다. 얼굴이 조금씩 상기되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상민 씨, 제게 구애(求愛)하는 거예요, 지금?”

  선하는 순간적으로 볼멘 목소리로 말을 풀어놓았다.

  “정말 뜻밖이네요. 지난밤에는 댁이 저의 머리카락 하나 손대지 않았기에, 제겐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요. 솔직히 저는 어젯밤에 잠을 못 이루었거든요. 처절한 배신감 같은 느낌에 휩싸였기 때문이죠.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 사내의 원형을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왜 마음이 변한 거예요?”

  나는 진정한 나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지만, 선하의 표정은 냉담하기만 했다. 지난밤에 무시를 당했다는 오해가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자꾸만 악감으로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듣지 않겠다는 듯한 결연한 자세로 일관하던 선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갑작스레 허리를 꺾으면서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밤에만 상민 씨가 저를 받아주었더라도 저는 댁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사랑을 얻고 싶지, 동정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지난밤의 마음의 실체가 바로 댁의 진정한 마음이라구요. 이제 저를 동정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마세요. 이제껏 저의 눈은 이 세상의 더러움의 실체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거든요. 한 마디로, 더 이상 환멸감을 느낄 만한 어떤 것도 없다구요, 알겠어요? 이제 저의 눈에는 세상이 세상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온갖 오물 투성이로 뒤덮인 지옥으로 여겨질 뿐이라구요. 이제 저는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폐인일 따름이에요. 이러한 제가 어찌 감히 댁처럼 고고한 분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있겠어요? 차라리 저를 암컷으로 여긴다면, 당장 여기서 옷을 …….”


  모멸감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격분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는 진정으로 선하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고 싶었다. 이제 나의 말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함을 느끼자, 슬그머니 목이 메었다.

  “선하 씨! 선하 씨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든 현실이 너무나 야속하게 느껴져요. 저까지 이 세상의 오물 중의 하나거니 하고 여기셔도 좋아요.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이 변하거들랑 저를 찾아 주세요. 기약할 수 없는 날일지라도 그 때까지는 선하 씨를 기다릴게요.”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선하의 눈시울에 가벼운 경련이 일더니 급기야 뽀얀 이슬이 맺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을 맞비비면서 자꾸만 도리질을 해대었다. 생각 같아서는 왈칵 달려들어 그대로 껴안아 주고 싶었지만 말이다. 나는 텅 빈 가슴속으로 하얗게 밀려드는 회한을 추스르느라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날 점심 무렵에 나는 회장이라는 여인을 내원암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선하가 여인이 두렵다면서, 나를 내원암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고운 외모와는 달리, 눈빛이 너무나 매섭고도 날카로워 보였다. 나는 선하를 내원암으로 데려다 주기에 앞서서, 선하에게 미리 당부를 했었다.

  “선하 씨, 일단은 모든 걸 잊으시구요. 다시 한 번 동아리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보세요. 참, 홍 교수는 며칠 전에 객원 교수가 되어 미국으로 떠났다면서요? 이제는 잡념의 근원도 사라졌으니, 정말 잘 됐군요. 부디 열심히 하세요. 정 견디기가 힘들게 느껴지면, 언제든지 위도로 돌아오세요, 알겠죠? 위도의 눈부신 태양과 맑은 바람이 어쩜 선하 씨께 새로운 활력을 줄지도 모르잖아요?”

  내원암에서, 여인은 나를 보자마자 의외로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는 내게 선하와의 관계가 어떤 사이냐고 물었었다. 나는 굳이 선하와의 관계를 시시콜콜히 얘기할 마음이나 근거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단순한 위도의 주민이라고만 여인에게 밝혔을 뿐이었다. 그랬는데도 어쩐 일인지, 나의 대답에 여인은 크게 안심을 하는 눈빛이었다. 여인은 눈에 새롭게 이채를 띠며, 묻지도 않은 일에 쾌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민 씨라 했죠? 내원암 입구에는 제가 잘 아는 여자 친구가 있거든요. 지선이라고 하는 얜데, 상민 씨도 잘 아시죠? 그 있잖아요, 상민 씨의 누드 모델로 섰던 그 여자 말이에요. 그 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했거든요. 내원암에 드나드는 여행객 중에는 선하와 흡사한 인상착의의 여자가 있다고 말이에요. 게다가 선하가 간혹 상민 씨와 어울려 다니더라고 얘기해 주었거든요. 지선이가 상민 씨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기에, 지난번에 제가 연락을 드린 거예요.”

 지난번에 여인으로부터 조만간 위도를 방문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내가 선하에게 전했음에도 말이다. 선하는 위도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여인이 위도를 방문했기에, 선하는 여인에게 붙잡힌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여인이 섬을 방문한 지 사흘만에, 선하는 여인과 함께 위도를 떠난 거였다. 


  석양에 젖은 시계를 바라보니, 저녁 일곱 시 무렵이었다. 두 번째의 뱃고동이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해안에 휘감기고 있었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여태껏 누워 있던 반석으로부터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선하가 심구미 서쪽의 해변을 거닐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곧장 심구미의 해변 길을 향해 달렸다. 

  해변에서 갯벌로 열리는 길목에서였다. 세 그루의 커다란 미루나무가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껏 잎새를 풀어 젖히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강해질수록 미루나무에 자리를 잡았던 새들의 둥지가 마구 흩날려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둥지가 떨어져 내릴 적마다 나의 심장의 박동도 자꾸만 뜨끔거리는 느낌이었다. 왠지 둥지가 바스러져 내릴 때마다, 내 마음의 보금자리도 괴멸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꾸만 허물어져 내리다가는 종내 뿌리마저도 뽑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렵고도 불길한 예감에, 급기야 나는 백사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심구미의 갯벌에 들어서자마자 백사장 가득히 물안개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리하여, 좀처럼 해변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뽀얀 안개에 휩싸인 채, 심구미의 백사장을 따라 절반쯤 걸었을 때였다. 문득 여인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록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선하임을 알아차렸다. 선하라는 판단이 서자마자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선하 씨! 어디에 있나요? 대답하세요.”

  “어머, 상민 씨. 나 여기 이쪽이에요.”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점차 소리의 진원지에 다가설 무렵에야, 석양의 백사장을 배회하는 선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광막하게 드러누운 백사장을 얼마 동안이나 서성거렸던지 선하의 전신에는 도무지 힘이라곤 없어 보였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세 파르스름한 연기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찡해 오며, 선하를 향해 달려갔다. 내가 달려가자 선하도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선하와 나는 서로를 껴안은 채, 감격하여 목이 메었다. 서로의 뺨이 살짝 닿는 순간이었다. ‘훅’하고 불에 덴 듯한 느낌이 전신을 휩쓸었다. 한동안 석상이나 된 듯, 가슴을 할딱거리며 엉겨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윽고 서서히 포옹을 풀고는, 나는 잠시 선하를 바라보며 마주섰다. 그러다가, 핏빛으로 타오르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선하와 함께 천천히 해변 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용기를 내어 선하에게 마음속의 얘기를 털어놓으려고 했다.

  “선하 씨! 제가 다시 한 번 선하 씨께 청혼을 한다면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녀는 나의 입을 그녀의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아직도 저를 잊지 않으셨나요? 하지만, 부질없는 일일 따름이에요. 제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위도의 석양 때문이었어요. 심지어 꿈에서조차 위도의 장엄한 석양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석양을 볼 때마다 사무친 저의 설움을 달랠 수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상민 씨의 저에 대한 관심과 호의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나는 선하에게 내처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을 영위하겠느냐고 말이다.

  “아직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건 없어요. 그 어딘들 내 마음을 붙잡을 만한 곳이 있어야 말이죠? 우선은 호젓한 산골을 찾아, 창극 구상을 하면서 보낼 예정이에요. 비록 제가 떠나더라도 위도의 석양과 상민 씨의 우정은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선하는 격포행 마지막 배로 잠시 후에 위도를 떠날 거라고 했다. 한동안 말없이 그녀와 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선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이 먼발치로 바라보이는 해변에서였다. 썰물이 되어 밀려났던 바닷물이, 조약돌을 뒹굴리며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다. 그 동안 혼자서 얼마나 백사장에서 흐느꼈던 걸까 ? 끓어오르는 설움을 감추려고 애써, 도리질을 해 대던 선하였다. 선하는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부드럽고도 섬세한 손을 보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며, 서슬 퍼런 슬픔이 빛살처럼 날아올랐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는 이별이었다.

  나는 점점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추스르며, 서서히 손을 내밀어 선하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관자놀이를 지나는 그녀의 실핏줄이 자꾸만 떨리면서, 선하의 눈동자엔 뽀얀 이슬이 맺혀 흘러내렸다. 덩달아, 감전이라도 된 듯, 어느새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선하 씨! 그래, 현실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죠? 부디 당신의 가시는 길에 행운이 함께 하길 빌겠어요. 당신께 조금의 힘도 되어 드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

  때마침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맞서, 나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눈물을 삼키려고 했다. 찰나간의 느낌 때문이었다. 왠지 나마저 눈물을 쏟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상심한 여인을 위로하고 달래야 할 나마저 눈물을 쏟는대서야! 나는 ‘훅’하고 치솟는 흐느낌을 가까스로 억누르느라고 잠시 버둥거렸다. 선하를 위해 뭔가 위로의 말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말이다. 공허한 느낌에 휩싸여, 자꾸만 코끝이 먹먹해져 오며, 하염없이 눈물만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조금 전부터 서서히 밀물로 차 오르던 백사장이었다. 바닷바람에 휘말려, 백사장 가득히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슬이 맺혀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백사장 가득히 피어오른 물안개가 석양빛을 받아 고운 망사처럼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