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독도의 물안개
손정모
어디를 둘러봐도 불빛 하나 없다. 별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안개 지대다. 경북 영일면 오기리의 오기 저수지. 거기는 울진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왕피천의 발원지다. 현우는 잠시 시계를 들여다본다. 새벽 4시 반이다. 눈이 있어도 사물을 볼 수가 없다. 밤 내내 저수지에서 증발된 수증기 탓이리라. 문득 지난밤 늦게 걸려온 윤지의 전화 목소리가 떠오른다.
“현우 씨! 윤지예요. 너무 늦은 시각이죠? 이제 겨우 시간이 나네요. 내일 오전 10시까지 오기 저수지로 갈게요. 야외에서의 첫 만남이라 너무 떨리네요. 그럼, 내일 봐요.”
현우가 해양 생태의 논문을 들여다보며 졸음에 시달릴 때였다. 견디기가 힘들어 막 자리에 누운 직후였다. 눈도 뜨지 못한 채 받은 전화였다. 청순한 처녀의 목소리라 여운이 감미로웠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는 이내 코를 골며 잠들었다.
안개더미는 더욱 두꺼워지는 느낌이다. 현우는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는 중이다. 어디서인지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들리는 건 저수지에서 찰랑대는 물결 소리뿐. 주위는 죽음 같은 정밀(靜謐)에 잠긴 새벽이다. 여름철인데도 새벽의 바람결엔 칼날이 감춰진 듯하다. 느껴지는 감촉이 싸늘하기 그지없다. ‘야외에서의 첫 만남이라 너무 떨리네요.’ 바람결에 묻어나는 윤지의 청아한 목소리. 현우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설렌다. 공적인 만남은 세 차례나 있었다. K 해양 연구원(海洋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과 N 국방 연구소(國防硏究所)의 연구원끼리의 교류였다. 해양 연구원의 연구원인 현우와 국방 연구소의 연구원인 윤지. 국력 신장의 기여라는 과제를 놓고 두 기관은 교류가 잦은 편이다. 현우는 발 아래로 밟히는 흙의 감촉에 매료되는 기분이다. 흙이 전신을 포근하게 받쳐주는 느낌이 너무 좋은 현우다. 31살의 총각인 현우의 연구 영역은 해양 생태 환경 분야다. 27살의 윤지의 연구 영역은 미사일 분야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지역의 연구에 있어서는 2기관의 공유 영역이 많았다. 제한된 영역의 자료가 내장된 파일을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현우는 경기도 안산에서 대전으로 3번이나 내려갔었다. 그 때마다 윤지가 자료의 열람에 도움을 주었다.
자료의 열람이 끝난 뒤인 3번째의 만남에서였다. 휴게실에서 윤지가 대추차를 정성껏 끓여 현우와 서로 마주 앉았다. 대추차를 끓이는 내내 윤지는 현우의 걸출한 외모에 감탄했다. 단번에 이목을 끄는 귀티 나는 용모. 게다가 늘씬한 키에 다부진 골격. 일단 그의 얼굴에 시선이 닿기만 하면 눈길을 거둘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애틋한 감정을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그리하여, 대추차를 통해 휴게실로 현우를 부른 거였다.
모래와 황토가 절반씩 섞인 토양이 저수지 주변을 에두르고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엔 마름이나 여뀌 등의 수초가 어우러진 상태다. 물가의 둑 위엔 곳곳마다 미루나무가 치솟아 있다. 대다수가 20여 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목들이다. 대추차를 나누면서 서로의 신상(身上)을 확인했다. 서로에게 애인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둘은 전자 메일의 주소를 수첩에 적었다. 그 날부터였다. 메일을 통해 둘은 서로의 첫인상에 매료되었다며 점차 정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둘은 2개월간 매일같이 메일을 주고받았다. 서서히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둘에게 배당된 후반기 프로젝터에 공교롭게도 독도에 관한 항목이 있었다. 현우에게는 8월말까지 독도에 가서 곤충류의 잠자리목(目:order)에 대해 확인하라는 거였다. 연구의 확인 기간은 30일간이었다. 현재까지는 왕잠자리(Anax parthenope)와 된장잠자리(Pantala flavescens)만이 보고 되어 있을 뿐이었다. 연구원(硏究院)에서는 현우와 동갑인 호준을 공동 연구원으로 묶어 주었다. 윤지에게는 독도의 레이더 기지에 대한 현대화 작업이 과제로 부여되었다. 첨단 장치를 부착하여 수중(水中)으로 침투해 오는 적마저 탐색하도록 하는 거였다. 수중의 음파(音波)나 전자기파(電磁氣波)까지도 놓치지 않고 탐색하려는 거였다. 일상적인 레이더는 대기를 통해 전파되는 전자기파를 주로 탐색하는 터였다. 여기에다가 수중을 거쳐 전파되는 파동(波動)마저 탐색하게 된다면 금상첨화인 셈이다.
현우와 윤지는 메일의 교신을 통해 프로젝터의 기간을 부분적으로 맞추는 데 성공했다. 윤지의 경우에 레이더 시설만 손대는 데에는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부대적인 시설 보완 공사는 미리 공문을 보내 진행시킨다는 거였다. 윤지가 현장에 도착해서 할 일은 전자 장비를 추가로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야외에서의 첫 만남이라 너무 떨리네요.’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윤지의 목소리가 거듭 떠오른다. 서울 신림동의 S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연구원으로 취업한 현우다. 반면에 윤지는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취업한 선임 연구원이다. 공부하느라고 미팅에는 신경도 못 썼다는 그녀다. 그녀가 취업하고 보니 은근히 배우자를 찾는 데에 신경이 쓰이더라고 했다. 그래서 3번째의 업무적 만남에서 적극적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을까? 야외에서의 첫 만남을 위해 그녀가 오기 저수지로 온다고 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그녀를 만나게 되리라. 그녀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현우의 가슴이 뒤설렌다. 어쩜 그렇게도 첫눈에 취할 정도의 미모였는지? 생각할수록 현우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탁월한 미모의 여인. 그에겐 윤지를 만나려고 오랜 세월을 기다렸던 느낌마저 들 정도다.
햇살이 퍼지면서 안개는 씻은 듯 스러져 버린다. 벤치에 앉아 수면을 들여다볼 때다. 경적이 짧게 울리더니 윤지의 백색 승용차가 와 닿는다. 현우가 손을 흔들자 그녀가 승용차에서 내려 걸어온다. 살짝 미소 띤 얼굴이 눈부시게 청아한 느낌이다. 몸에 착 달라붙는 담황색의 블라우스에 백색의 미니스커트 차림새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썹과 흑백이 또렷한 눈매. 빛살처럼 연신 반짝이는 눈동자. 오뚝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 게다가 우윳빛으로 윤기를 머금은 살결에 볼록하게 도드라진 젖가슴과 가냘플 정도로 가는 허리. 현우는 어디를 따져 봐도 조화의 극치를 이룬 느낌에 휩싸인다. 현우는 저수지 주변을 잠시 둘러본다. 그들을 제외한 인적이라곤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주말이 아닌 평일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걸어오는 윤지를 보는 순간. 현우는 자신도 몰래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금세 둘이 맞닥뜨리는 지점에서다. 현우는 윤지를 안아든 채 몸을 한 바퀴 돌린다. 얼마나 가슴 설레며 그녀를 기다렸던가? 현우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느껴질 만큼 마음이 달뜬 상태다. 둘의 숨결이 맞닿는 순간. 화끈대는 그녀의 열기에 현우는 감전되는 느낌이다.
“무척 보고 싶었어요.”
속삭이는 듯한 윤지의 목소리가 현우의 귓전으로 흘러든다.
“저두요. 기다리는 내내 가슴이 달아올랐어요.”
그녀를 땅에 내려놓으면서 현우도 먹먹한 목소리로 응답한다. 남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나 휘청댄다. 너무 벅차서 탈 듯한 숨소리가 빛살처럼 흩날린다. 한동안 달뜬 가슴이 가라앉은 뒤. 둘은 서서히 못 가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가 마름과 갈대가 산재한 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 주변엔 마침 숱한 잠자리 떼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윤지가 신기한 듯 관심을 보인다.
“웬 잠자리 떼일까요?”
현우가 기다렸다는 듯 차분하게 설명한다.
“잠자리는 알과 유충을 거쳐서 성충에 이르죠. 다른 곤충들처럼 번데기 단계를 거치지 않아서 불완전 변태라고 해요. 잠자리의 유충이 성충으로 변환하는 장소는 주로 습지의 수초예요.”
햇살은 눈부시게 맑아서 어지러울 정도다. 수면 위로 치솟은 마름 줄기 위를 현우가 가리킨다. 거기엔 곤충의 애벌레들이 매달려 있다. 윤지가 수초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며 입을 연다.
“아니, 이건 곤충의 애벌레 같은데 무슨 벌레죠?”
현우가 싱긋 미소를 띠며 응답한다.
“잘 들여다봐요. 이게 잠자리의 유충이에요. 그냥 매달린 게 아니라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이 들죠? 곧 재미있는 관찰거리가 생길 거예요. 비디오카메라가 있으면 촬영해도 좋아요.”
윤지가 한껏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한다.
“그러면 차에 가서 카메라를 잠시 꺼내 올게요. 그 사이에 중요한 장면이 지나가 버리는 건 아니겠죠?”
오전 11시 무렵이다. 수면 위로 돌출한 갈대 줄기에 8cm 크기의 잠자리 유충이 매달려 있다. 크기로 볼 때 현우에겐 영락없는 왕잠자리의 유충으로 여겨진다. 매달린 채 규칙적인 준동(蠢動)을 하는 게 탈피가 임박한 모양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유충을 들여다보며 현우와 윤지는 앉아 있다. 못 가에는 마침 커다란 미루나무가 널따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스럽다. 유충의 준동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 유충의 등껍질이 벌어지며 거기로부터 뭔가가 돌출한다. 그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밀려나온 게 잠자리의 등 부분이다. 다음으로 머리 부분이 밀려나오더니 서서히 꼬리 부분이 빠져 나온다. 등에서 꼬리 부분이 빠져 나오기까지 대략 40분이 걸렸다. 꼬리 부분이 빠져 나온 직후의 날개 부분은 돌돌 말린 채다. 말려 있는 거무스레한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투명해지는 데 3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이 무렵에 배와 등은 녹색으로, 꼬리 부분은 갈색으로 변하였다. 동시에 뚱뚱한 꼬리 부분은 날기에 적합하게 가냘픈 모양으로 변했다. 이런 변화를 거쳐 대략 3시간 50분이 경과될 때였다. 왕잠자리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더니 서서히 날개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갈대 줄기에서 왕잠자리의 몸이 미끄러지는 순간. 마침내 왕잠자리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왕잠자리의 비상을 보는 순간. 둘은 자신도 몰래 몸을 일으켜 환호성을 질러댄다.
“이야! 마침내 날아올랐네!”
“어쩜 저리도 경쾌한 모습일까!”
둘은 콧잔등으로 밀려드는 진한 감동으로 손뼉을 쳐댄다. 이런 과정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는 둘은 저수지를 떠난다. 윤지가 감동한 음색으로 말한다.
“새로운 비상의 의미가 뭔지를 알겠군요. 너무나 신비롭고 감격스러워요.”
현우가 고개를 끄떡이며 응답한다.
“그럴 수밖에요. 비상이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출발이잖아요?”
둘은 저수지 부근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는 윤지의 산타페로 다가선다. 차는 곧바로 울진의 구산리 포구로 향해 달린다. 편안한 승차감에 젖어들며 현우가 생각에 잠긴다. 현우는 가족의 과거사를 떠올린다. 그의 고향인 울릉도. 그의 아버지는 1953년 4월 27일에 창단된 독도 의용 수비대원 33명 중의 일원이다. 1956년 12월 30일을 기해 국립 경찰에게 임무를 인계하기까지 숱한 비화(秘話)가 있었다. 1955년의 일이었다. 도발 야욕이 들끓는 일본인들이 어선 3척에 올라타고는 밤중에 독도로 진입했다. 외관만 어선이었을 뿐. 어선의 곳곳에는 소총 이외에 기관총까지 장착한 상태였다. 의용 수비대는 즉시에 정선 신호를 보내고 물러갈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3척의 어선은 동도의 북동 방향으로 배를 진입시키려고 했다. 소중한 기억을 전하려는 듯. 현우가 윤지에게 말한다.
“독도의 의용 수비대와 일본 어선간의 교전이 몇 분간 일어났었죠. 결국 일본 어선은 뱃머리를 돌리고 물러가 버렸어요. 이런 와중에서 저의 아버지는 일본인의 총탄에 우측 다리의 관절에 관통상을 입었어요. 그 날 이후로 저의 아버지는 목발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부모에 대한 현우의 이야기에 이어 윤지가 말을 잇는다. 그녀의 목소리에 휩쓸려 이전에 들었던 그녀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녀의 고향은 강릉의 어촌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소형 동력선을 몰아 생계를 꾸려 나갔다. 독도 주변의 한일 중간수역까지는 빈번히 어로 활동을 나서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두 차례나 일본의 경비정에게 나포되었다. 일본의 배타 수역을 침범했다는 혐의였다. 그렇지만, 윤지의 아버지는 일본 수역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마치 현우의 기억 세계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윤지의 목소리가 현우의 귓전으로 밀려든다.
“일본 경비정은 제 아버지의 배를 로프로 묶어 끌고 다니다가는 아무 데서나 풀어놓았대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일본 경찰들이 저의 아버지의 몸에 폭행을 가하기까지 했답니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저의 아버지는 원해(遠海)의 어로 활동에 있어서 몸을 사리게 되었어요.”
윤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현우의 얼굴에 격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개탄하는 목소리로 현우가 윤지를 향해 묻는다.
“근래에 일본이 독도 문제에 왜 자꾸만 시비를 거는지 아세요?”
기다렸다는 듯. 윤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흘러든다.
“저의 견해라기보다는 저희 연구소 직원들의 관점을 얘기해 볼게요.”
현우의 귓전으로 윤지의 얘기가 밀려든다.
“일본이 시비를 거는 곳은 비단 독도뿐이 아니에요. 중국의 춘샤오 해저 가스 채굴 지역과 러시아의 4개 도서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어요.”
윤지의 얘기를 듣는 순간. 해외 일간지에서 읽은 기사의 내용이 현우의 머리를 스친다. 일본은 근래에 중국의 춘샤오 해저 지역을 일본 수역이라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야기되자 중국과 일본은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일본 북방 4개 도서(남쿠릴 열도)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비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의도는 과거의 군사 대국으로의 복귀를 지향하리라는 분석이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보유량은 38.6톤에 이른다. 이 자료는 2005년도에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3월에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 의하면 제조 가능한 핵무기의 수는 4,825 ∼ 9,650개에 이르리라고 추측된다. 읽은 기사의 내용을 떠올리며 현우가 윤지의 견해를 묻는다.
“여론대로 과연 일본이 핵무기로 무장할 날이 임박했을까요?”
확신에 찬 태도로 고개를 끄떡이며 윤지가 응답한다.
“그럼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예요. 일본이 군대를 갖추고 핵무기까지 제조한다면 아시아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도 남겠죠.”
윤지의 얘기에 공감하며 현우는 연신 고개를 끄떡인다. 승용차는 점차 울진군의 남부 지역으로 내달리고 있다. 달리는 내내 여름의 햇살이 따갑기만 하다. 피부에 휘감기는 햇살에 떠밀려 현우에겐 근래의 주변 여론이 떠오른다. 독도는 엄연히 한국의 영토이기에 열을 올려 일본과 따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일본이 바라는 분쟁 지역으로 치닫는 구실밖엔 못한다는 견해다.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면 일본은 국제 사법 재판소에 즉시 제소하리라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대외적으로 우세한 일본의 영향력 때문에 우리나라가 불리해질 게 뻔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남북이 통일을 하여 온전(穩全)한 국력을 회복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예컨대 북한의 미사일에 남한의 초정밀 전자회로만 결합시켜도 외국이 두려워할 거라고 예상된다. 2005년부터 국내의 S전자가 양산(量産)하는 256Mb (Mega bit) 디램(DRAM)을 예로 들어도 되리라. 이것은 1초에 단행본 1만권 분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전자회로다. 문득 윤지가 음료수 캔을 현우에게 건넨다. 윤지도 음료를 마신 뒤에 말을 잇는다. 윤지의 말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현우의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남한의 탁월한 전자 기술이 이북의 미사일과 결합된다면 명중률은 백발백중이 되리라 예상돼요. 통일을 위해서는 여러 정치적 경제적 요건이 성숙되어야 할 상태라고 봐요. 여기에 관한 많은 교훈은 독일의 통일 사례에서 찾아야 하리라 여겨져요.”
현우는 윤지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는 상태다. 일본의 억지스런 시비에 휘둘리는 한국의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민족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전 국민이 통일에 신경을 써야 하리라 여겨진다.
차는 어느새 울진군의 구산리 해변에 이른다. 오후 다섯 시를 갓 넘기는 시점이다. 둘은 곧 구산리 포구 부근에 세워진 대풍헌(待風軒) 건물에 들어선다. 건물의 관리인은 둘을 맞아 대풍헌이 세워진 배경과 역사를 설명한다. 안내인으로서도 손색없는 설명에 둘은 관리인의 얘기에 몰입된다.
“조선 숙종 23년인 1697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수토사(搜討使)를 파견했어요. 삼척진의 현감과 월송포의 만호를 정기적으로 파견하곤 했죠. 그 때 수토사들이 울릉도 방향의 북동풍이 불 때까지 기다리며 머물렀던 정자가 대풍헌입니다. 정면은 4칸이며 측면은 3칸인 일자형의 홑처마 팔작집(네 귀에 추녀를 매단 기와집)이죠.”
건물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건물 내부도 샅샅이 살펴본다. 그리고 한문으로 작성된 고문서들도 펼쳐볼 기회를 갖는다. 건물 중앙의 마루에 앉아 창 밖으로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과거에 수토사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왜적들로부터 지키려고 군대를 이끌고 간 곳이리라. 과거에 그들이 창검을 치켜든 채 울릉도와 독도를 호령했을 삼엄한 기상을 떠올려본다. 때로는 해상에서 왜적들과 전투를 하기도 했으리라. 그런 수토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울릉도와 독도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자그마치 600 리나 떨어진 뱃길에 창검을 앞세워 바다로 나서던 수토사들. 그들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대풍헌의 팔작지붕을 뒤흔드는 정경을 떠올리자 감회가 예사롭지 않다. 현우와 윤지가 대풍헌 마루에 앉아 한동안 파도소리에 취해 있다가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관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둘은 곧장 구산 포구로 발길을 옮긴다. 문득 생각난 듯 윤지가 현우에게 묻는다.
“참, 이 번 프로젝터에 공동 연구자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 분과는 언제 만나죠?”
현우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응답한다.
“저와 동갑인 호준은 사흘 뒤에 독도로 곧바로 가기로 약속했어요. 긴급히 해결해야 될 개인 사정이 있나 봐요. 그렇지만 울릉도에선 우리가 며칠간을 체류해야 하기에 독도에는 호준이 먼저 도착할 거예요.”
둘은 포구 부근의 횟집을 찾아 식탁에 마주 앉는다. 이내 도다리 회와 과일주가 식탁 위에 놓인다. 서로의 술잔에 술을 채운 후. 현우가 말문을 연다.
“저는 대풍헌을 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어요. 1416년의 태종의 공도(空島) 정책은 안타까운 실책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커다란 섬에 왜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느냐는 거예요.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리도록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관리의 수도 늘고 선비의 취업 기회도 그만큼 늘잖아요? 공도 정책 때문에 해적들이 섬에서 무단으로 벌목을 자행했을 거예요. 일본 해적들이 들락거리면서부터는 은근히 섬에 욕심을 낼 빌미마저 주었을 거예요.”
윤지도 방그레 웃으며 응답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도 있었겠죠. 문제는 우리의 세대에서는 실수가 없도록 해야죠.”
둘은 술잔을 부딪고는 잠시 시선을 맞춘다. 둘은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의 강렬한 흡인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대를 왜 이제야 만났을까하고 둘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둘에겐 이 번의 프로젝터에 담긴 뜻이 심오하다고 여겨진다. 프로젝터의 연분으로 서로를 알게 되고 독도에까지 동행하게 된 게 아닌가? 둘은 이제 단순한 동행인이 아닌 미래를 기약한 연인이다. 현우는 근래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자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세요? 현우 씨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분 같아요. 마치 오래 전부터 제가 현우 씨를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생각마저 들어요.”
엉겁결에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깨어나 현우가 대꾸한다.
“저도 똑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아마도 전생의 인연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나 보죠?”
식사 후 둘은 구산 포구 부근에서 숙소를 따로 잡아 하루를 묵기로 한다.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며 현우는 먼저 윤지를 그녀의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 그리고 나선 그의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이튿날. 오전 10시 정각에 울릉도 행 여객선이 마침내 포항을 출발한다. 배가 동해를 달리면서부터 현우와 윤지는 갑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연한 청록색의 물결을 대할 때다. 현우의 머릿속으로 울릉도의 기후에 대한 정보가 떠오른다.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는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양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은 약 12℃이다. 가장 무더운 8월의 기온도 24℃를 넘지 않아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다. 또한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기온도 1.0℃에 이른다. 울릉도 근해는 안개가 많아 연중 흐린 날이 160일 이상이다. 강우 일수도 150일에 이르는 울릉도와 독도. 이러한 독도를 생각하자 가슴으로 착잡한 느낌이 밀려든다. 엄연한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시비를 거는 일본의 소행이 생각할수록 그에겐 밉살스럽게 느껴진다. 현우의 마음이 전해졌음일까?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윤지의 눈시울에도 물기가 서린다.
오후 1시 반에 배는 울릉도의 도동항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린 뒤에 그들은 순환 버스를 이용하여 울릉군 서면으로 향한다. 울릉도의 남서 방향에 있는 남양천 계곡을 찾아가는 길이다. 남양천은 성인봉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비파산을 감돌아 남양항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그가 알기로 울릉도에는 많은 하천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남양천 계곡을 찾은 이유는 강물에서의 잠자리의 분포를 조사하려는 것이다. 그는 투명한 재질의 얄따란 그물을 계곡을 따라 10곳에 세운다. 그물의 폭과 높이는 공히 5m에 이른다. 그물의 테두리는 가벼운 알루미늄 막대이다. 3개의 그물은 각각 ‘ㄷ’자 형태로 붙여져 수직으로 설치되어 1세트를 이룬다. 설치 장소의 간격은 대략 50m의 거리다. 그물을 설치한 뒤부터 최소한 2시간은 관찰해야 한다. 윤지는 현우의 작업을 거든다. 망사에 낀 잠자리의 숫자를 센 뒤엔 곧바로 우측 날개에 형광용 물감을 바른다. 날개에 채색되는 면적은 직경 1cm에 이르는 원에 해당한다. 형광 물감은 멀리서도 햇살에 반사되어 관찰자의 눈에 띈다. 형광 물감은 잠자리에겐 전혀 피해가 없는 식물성 도료이다. 형광 물감을 칠한 잠자리는 곧바로 하늘로 날려 보낸다.
시간은 거침없이 흐른다. 어느새 관찰에 소요된 시간은 5시간에 이른다. 장비를 걷어서 가방에 챙긴 뒤다. 현우는 맑은 물살이 굽이치는 냇가에 앉아 윤지를 향해 입을 연다.
“옆에서 도와주어서 무척 고마웠어요. 일도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어요.”
윤지도 현우의 곁에 나란히 앉아 현우를 향해 말한다.
“당연히 제가 도와야죠. 날려 보낸 잠자리가 수천 마리가 넘죠? 이처럼 잠자리가 많을 줄은 미처 몰랐어요.”
현우는 윤지의 맑은 눈매를 바라보며 부가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윤지는 눈빛을 반짝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울릉도의 바람은 서풍과 남풍 계열이 주종을 이루어요. 연간 평균 풍속은 초속 4.3m에 이릅니다. 여름철에는 섬에서 치솟는 상승기류에 휩싸여 서풍을 타고는 독도까지 잠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죠.”
이런 사실에 대한 확인을 하려고 현우가 울릉도를 찾은 것이다. 잠자리가 87.4km 거리의 독도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하여 현우는 울릉도에서 5일간을 더 체류하기로 한다.
닷새 후 오후 2시. 현우만 도동항에서 독도를 향해 정기 여객선으로 출발한다. 윤지는 국방 연구소로부터의 전자 부품의 택배를 수령해야 한다고 한다. 택배를 수령한 뒤에 독도로 향하겠다고 한다. 현우가 탄 배가 동도의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0분이다. 동도의 서편에 있는 부두의 길이는 80m에 이른다. 이 선착장은 1997년 11월 7일에 완성되었다.
배가 동도에 도착하자마자 현우와 윤지는 주위를 둘러본다. 동도 맞은편의 서도의 자태가 웅장해 보인다. 동도의 뚫린 길을 따라 헬기장을 거쳐 등대와 막사에 이른다. 현우가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독도는 자못 웅장하기만 하다. 독도를 바라보는 현우의 감회가 예사롭지 않다. 독도는 신생대 제3기인 플라이오세 전후기 무렵의 460만 년 전에 형성된 화산섬이다. 섬 전체는 화산암과 화산 쇄설성 퇴적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2005년 6월 27일에 정부는 독도에 관련된 최신 관측 자료를 발표했다. 최신 관측에는 위성항법장치(GPS) 기법과 항공사진 등이 토대로 사용되었다. 이들 관측 자료에 의하면 독도는 동도와 서도를 제외한 89개의 무인도의 집합체다. 총면적은 187,000m2에 이르는 섬이다. 동도의 주봉의 해발고도는 88m이며 서도의 경우는 168m이다. 동도와 서도는 151m의 거리로 마주 보고 있다.
동도 정상에는 숙소이자 막사인 건물이 9동이 들어서 있다. 이 주위로 등대와 레이더 기지도 있다. 현우가 막사에 이르자 동료 연구원인 호준이 이미 도착하여 호준을 반긴다. 수비 경찰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현우와 호준은 배정받은 숙소에 가서 여장을 푼다. 잠시 후에 간편한 복장으로 둘은 동도를 둘러본다. 동도의 가장자리는 각력 응회암이란 퇴적암으로 형성되어 곳곳에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참나리, 천문동, 강아지풀, 억새, 띠, 민들레, 쑥, 구절초, 명아주 등의 초본류가 주종이다. 둘은 동도의 해안을 더듬으며 잠자리의 생태를 차근차근히 조사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도 밤이 깊었을 무렵. 현우와 호준이 동도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토론을 할 때다. 현우의 핸드폰이 진동음을 내며 떨어댄다. 금세 현우의 귓전으로 윤지의 음성이 밀려든다.
“저예요. 택배를 수령했거든요. 내일 들어가는 배로 독도로 갈게요. 그럼, 내일 봐요, 안녕!”
현우의 가슴이 다시 설렌다.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여인인 윤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윽고 현우와 호준은 전깃불을 끈 뒤에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오후 3시 10분 무렵이다. 배가 도착한 부두 위로 윤지가 내려서고 있다. 현우가 달려가 윤지를 맞는다. 윤지의 손에서 커다란 화물을 받아든다. 화물을 현우에게 넘기면서 윤지가 말한다.
“이게 레이더에 관련된 전자 부품이에요. 이것들만 장착하면 수중의 전파나 음파까지도 레이더에 읽히게 되는 거죠.”
현우는 레이더 기지 앞에서 윤지를 경찰들에게 소개한다. 경찰은 곧바로 국방 연구소로 전화를 걸어 윤지의 신분을 확인한다. 그런 다음에 윤지를 레이더로 안내한다. 그 때부터 윤지는 레이더에 신형 전자 장비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반면에 현우와 호준은 경찰의 전마선(傳馬船)으로 서도로 들어선다. 서도의 남쪽 언저리에서 내려서 섬을 타오른다. 울릉도에서 윤지와 같이 했던 작업을 호준과 함께 실시한다. 투명한 망사를 설치하고 그물에 걸린 잠자리의 날개에서 형광 표지를 탐색해 낸다. 그 날은 서도의 동남부의 민가 주변에서 작업을 진행한다.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저녁 무렵이 되자 전마선으로 그들은 동도로 되돌아간다. 동도와 서도 간의 거리는 가까울 뿐만 아니라 조류도 완만하다. 그들이 동도에 닿는 순간 윤지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맞는다. 힘들었던 순간이 금세 사라지는 듯함을 느낀다. 이 때 웃음을 깨물며 윤지가 입을 연다.
“오늘 수확은 좀 있었어요? 저도 부착 작업을 다 마쳤어요. 성능 테스트만 남았는데 저녁부터 실시할 예정이에요.”
윤지의 설명에 따르면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성능 테스트를 한다고 한다. 울릉도에서 도착한 잠수함과 잠수부들이 서도에서 동도로 수중 침투 훈련에 들어간 상태다. 이들의 이동 상태를 레이더에 새로 부착된 감지 센서가 잘 읽어내느냐를 점검하려는 거다. 윤지가 현우에게 말한다.
“내일 새벽 3시까지는 테스트가 끝날 예정이거든요. 자고 일어나서 아침 9시 무렵엔 저도 현우 씨의 작업을 도우러 갈게요.”
“수면이 부족할 텐데 힘들지 않겠어요?”
“아뇨, 현우 씨가 하는 일이잖아요? 힘들더라도 제가 응당 도와야죠.”
순간적으로 현우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새벽까지 레이더 작업을 하고서도 그의 일을 돕겠다는 그녀가 아닌가? 자신도 몰래 현우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녀도 반사적으로 현우의 손을 맞잡는다. 섬세하고도 뽀얀 그녀의 손을 보는 순간. 감격한 현우의 콧잔등이 시큰대며 눈물이 핑 돈다. 용솟음치는 그리움의 물줄기가 그의 가슴에 소용돌이쳐 휘감긴다. 자신도 몰래 그녀를 향해 속삭인다.
“윤지 씨의 마음의 배려,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아예 내일은 오전 9시에 동도 선착장에서 출발하기로 하죠.”
미풍같이 우아한 그녀의 목소리가 현우에게로 밀려든다.
“네, 알았어요. 시간을 맞추도록 할게요.”
오후 6시 반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셋은 막사에서 낮 동안 일하고 탐색한 결과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뒤에 윤지는 여자용 막사로 건너간다. 현우와 호준은 남자용 막사로 들어가서 잠자리에 든다.
어느새 날이 바뀐 상태다. 아침 9시에 동도 선착장을 떠나 반시간이 걸려 서도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탐색 위치를 하루 전날의 것과는 다른 위치로 잡는다. 서도 중앙의 평원과 분지에 대한 탐색을 꼼꼼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아침 9시 반에 셋은 서도의 남쪽 해변에 내려선다. 섬 위로 가파르게 조성된 길을 따라 섬에 오른다. 독도는 지질 구조로 볼 때 신생대 3기에 형성된 조면암과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도의 해안은 주로 각력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내부는 조면암으로 되어 있다.
현우와 호준과 윤지. 이들 셋은 투명한 그물 세트를 50여m 간격으로 설치했다간 거두곤 한다. 각 그물은 높이가 5m, 넓이가 5m에 이르게 알루미늄 막대로 조형(造形)된 투명한 망사이다. ‘ㄷ'자 형으로 붙여져 수직으로 세워진 3개의 그물이 1세트를 이룬다. 그들이 가져간 그물은 30여 세트에 이른다. 그물을 설치한 뒤 2시간 간격으로 그물을 이동시키면서 조사를 실시한다.
오후 1시 무렵까지 포획된 100여 마리 중 형광으로 채색된 것은 1마리도 없다. 현우와 윤지는 허탈한 심정이다. 하지만 식사 때라 가져간 김밥 도시락과 식수를 꺼내 든다. 식사를 하며 셋은 울릉도에서 불어오는 서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과연 서풍을 타고 독도에까지 잠자리가 날아드는 게 사실인지? 아니면 선박이나 화물에 잠자리가 실려 독도에 도착되는 건 아닌지? 식사를 끝낸 뒤. 20분쯤 휴식을 취하고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그물 세트를 서도 중앙의 능선 쪽으로 이동시킨 직후이다. 호준이 큰 소리로 현우와 윤지를 부른다.
“이쪽으로 와 봐요. 여기 잠자리 2마리가 죽어가고 있어요.”
현우와 윤지는 놀란 마음으로 급히 호준에게로 달려간다. 호준이 가리키는 암반 위다. 거기엔 2마리의 왕잠자리가 임종에 이른 듯. 날개를 퍼덕이며 자꾸만 암반 위를 뱅뱅 돌고 있다. 날개에도 충격이 많이 간 듯. 많은 주름이 잡혔으며 꼬리가 힘없이 하늘댄다. 셋은 숙연한 표정으로 잠자리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윽고 한 마리가 먼저 죽고 다른 것도 날갯짓을 멈추고 드러눕는다. 암반 위엔 한낮의 정밀(靜謐)만이 휘감긴다. 두 생명이 스러진 자취만 허허로이 남아 있다. 셋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잠시 침묵에 잠긴다. 셋의 가슴에 애잔한 설움이 밀려들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정감이 더 섬세한 윤지의 눈시울에는 눈물마저 반짝 비친다. 생명체로부터의 생명의 이탈 현상에 숙연해졌기 때문이다. 잠자리나 인간이나 죽음에 임해서는 이치가 비슷하리라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현우가 정적을 깨뜨리며 입을 연다.
“아마 울릉도에서 바람결에 실려 왔다가 다시 울릉도로 돌아가지 못해 죽은 모양이에요. 일단 습지로 가서 알을 낳아야 할 텐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리네요. 마치 이 상황이 분단된 한국의 현실 같아서 가슴이 아프군요.”
호준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정말 비슷한 정황입니다. 숱한 남북 이산가족들이 임종에 임하여도 그리운 상대를 만나지도 못하고 죽잖아요?”
윤지도 애잔한 목소리로 대화에 합류한다.
“이산가족의 눈물을 볼 때마다 민족의 통일을 생각하게 돼요. 독일은 과감히 통일을 이루었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게 안 되죠? 그게 안 되기에 엄연한 우리 땅인 독도까지도 일본이 시비를 걸잖아요?”
셋은 잠시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셋의 의식은 공유된 견해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약소국의 설움이 서로의 가슴으로 왈칵 밀려들었다가는 금세 거센 물결로 출렁댄다. 혈관에 내재된 울분마저 펄떡펄떡 끓어오르려 하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통일을 앞당겨 국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두의 가슴이 뛴다. 셋은 타는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현우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1905년 2월 22일의 일이었다.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시키겠다고 의결에 붙였다. 일본은 이것을 근거로 독도는 일본의 땅이라고 떠들어댄다. 1905년의 상황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기 직전이기에 주권이 거의 상실된 처지였다. 그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은 아무런 국제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1910년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된 후 1945년에 일본이 패망했다. 문제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의 평화조약의 구문이다. 거기에 일본은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라고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울릉도에 소속된 독도도 당연히 일본은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에 관하여 수시로 시비를 걸어오곤 했다. 독도 근해의 어획량은 우리나라 전체 어획량의 60%에 이른다. 그뿐이랴? 근래에 들어 울산 동해 지역과 독도 부근에서는 대규모 유전(油田)의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유전이 발견되어 채유되기만 한다만 경제적인 수익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런 여러 요인들은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켜야 할 뚜렷한 명분들 중의 하나가 된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일행은 다시 활기차게 작업에 몰입한다. 오후 3시 무렵이 되었을 때다. 이 번에는 윤지가 환호성을 터뜨리며 현우와 호준을 불러댄다. 두 사내가 달려가 보니 윤지가 왕잠자리를 꺼내 보인다. 놀랍게도 우측 날개엔 사흘 전에 현우와 윤지가 표시한 형광 물감이 채색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현우의 몸에 환희에 찬 전율이 인다. 현우는 자신도 몰래 환호성을 터뜨린다.
이야앗! 이야아앗!
현우는 들뜬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마침내 울릉도의 바람결을 타고 여기에까지 왔네! 이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있나? 뽀뽀라도 해 주고 싶네. 덩치는 크지만 잠자리의 뺨이 어디에 붙었는지 모르겠군.”
윤지도 달뜬 음색으로 끼어든다.
“저도 너무 반가워 눈물이 다 났어요. 이 가냘픈 몸매로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생각할수록 신비롭게만 느껴져요.”
호준도 대견스러운 듯 왕잠자리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떡인다. 이후부터 셋은 보다 부지런하게 몸을 놀린다. 오후 5시에 동도를 향해 전마선을 타기 직전까지였다. 셋은 형광 물감이 발린 왕잠자리 7마리를 발견했다.
동도로 돌아온 후다. 현우는 경찰과 호준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오후5시 반부터 6시까지의 반시간 동안. 동도의 해변을 따라 윤지와 산책에 나선다. 독도는 원래부터 습윤한 곳이어서 해변을 에둘러 안개가 자욱이 피어 있다. 각력 응회암이 분쇄되어 만들어진 해안의 경사면에는 각종의 초본 식물이 어우러져 있다. 흔히 육지에서도 눈에 띄는 식물들이다. 억새, 띠, 강아지풀, 여뀌, 질경이, 구절초, 민들레, 박주가리 등. 특히 억새와 띠가 무리를 지어 바람결에 휩쓸리고 있다. 둘은 등대에서 북동쪽 해변으로 내려서는 길을 택한다. 다소 가파른 경사이지만 내려서는 데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일단 해변으로 내려서자마자 따가운 햇살이 안개를 꿰뚫고 간간이 밀려든다. 하지만, 점차 짙어지는 안개로 인해 둘은 안개 장막에 휩싸인 느낌에 잠긴다. 현우가 고개를 돌려 섬을 올려다본다. 자욱한 안개에 가려 해안의 초소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섬의 동북쪽 방면으로 더 걸어가니 20m 길이의 간이 선착장이 눈에 띈다. 현우가 그 부분을 가리키며 윤지를 향해 말한다.
“바로 이 부근에서 야습한 일본 어선의 사격에 저의 부친이 무릎 관통상을 입었어요. 오늘날까지 언제나 다리를 절고 계시는 아버지예요. 독도를 지키려다가 평생 동안 불구의 몸이 되셨기에 무척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저는 다른 누구보다도 독도에 대한 애착심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감회 어린 눈빛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윤지도 응답한다.
“아, 그러셨군요. 저의 부친도 독도 근해에서 조업하다가 일본 경비정에 나포되어 구타당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저도 독도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보금자리라고 생각해요.”
둘은 처연한 심정으로 간이 선착장 일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긴다. 빽빽한 안개 장막을 뚫고 찰나 간에 석양이 잠시 드리워진다. 현우와 윤지는 서서히 가슴이 달뜨는 느낌이다. 안개에 묻힌 채 석양빛을 받는 느낌이 묘하기 그지없다. 이 미묘한 순간에 둘의 가슴을 잇는 정감의 물결이 휩쓸린다. 양가의 부모들의 애환이 실린 독도에서 함께 석양을 맞게 되다니! 둘은 달뜬 가슴이 되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다가선다. 정녕 무슨 힘이 시키는 줄도 모르는 채다. 뭔가 말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애틋함이 서로의 가슴에 일렁인다. 둘은 자신도 몰래 서로를 향해 왈칵 달려든다. 알지 못할 힘에 이끌리듯 거의 동시에 둘은 서로를 얼싸안는다. 뺨과 뺨이 맞부딪는 순간. 뺨이 델 것 같은 화끈거림에 취해 둘은 더욱 깊숙이 껴안는다. 둘은 서로를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편안한 안식처라고 여긴다. 현우가 윤지의 어깨를 어루더듬자 윤지도 현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자욱한 안개 장막 속. 들리는 건 해변을 적시는 파도소리뿐. 둘은 감전된 물체처럼 한동안 밀착했다가 서서히 서로를 풀어준다. 진한 술에 취한 듯 둘의 뺨은 여전히 복사꽃처럼 활활 탄다. 현우가 윤지의 손을 맞잡은 채 적막을 깨며 속삭이듯 말한다.
“우리의 사랑을 독도가 영원히 지켜볼 거예요.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해요.”
마치 꿈꾸듯 윤지도 현우를 향해 속삭인다.
“저도 제 마음을 송두리째 당신께 드릴게요. 영원히 저를 사랑해 주실 거죠?”
윤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둘은 재차 서로를 힘껏 포옹한다.
현우와 윤지가 해변에서 막사로 돌아온 뒤다. 오후 6시에 셋은 경찰과 합류하여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윤지는 대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선착장으로 내려선다. 며칠 전부터 예약해 둔 비정기선이 선착장에 대기 중이다.
저녁 6시 40분이다. 울릉도 행 비정기선이 서서히 동도를 출발한다. 수면을 가르며 해풍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해변을 꽉 메웠던 안개가 서서히 내풀린다. 윤지가 갑판 위에 서서 현우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틀을 함께 독도에서 머물던 윤지. 그녀가 갑판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하던 정감이 현우의 가슴으로 휩쓸린다. 그녀와의 만남이 새록새록 가슴에 정겨운 물결로 밀려들던 이틀간이다. 뽀얀 안개더미를 사이에 두고 그녀를 바라보는 현우. 그의 가슴에 싸한 애환이 인다. 뭍으로만 올라서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그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더미 사이로 손을 흔드는 그녀를 대하는 순간. 문득 현우의 콧등이 시큰거리다가 눈물이 비친다. 왠지 그녀를 휩싼 안개더미가 독도를 울리는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암담한 독도의 현실이 현우의 가슴을 젖게 한다.
현우는 거듭 생각에 잠긴다. 언제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랴? 독자적인 작전권도 못 가진 국가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니! 통일이 되어 온전한 자주국이 되기만 한다면? 일본이 아니라 세계의 그 어떤 나라인들 감히 독도 문제로 시비를 걸 것인가? 생각할수록 독도 문제는 눈앞의 안개더미같이 답답한 과제로 여겨진다. 현우는 답답한 심정을 풀어헤치려는 듯. 일부러 활짝 웃으며 팔을 번쩍 든다. 고갈되려는 에너지도 힘껏 끌어올려보려는 몸짓이다. 그리고는 윤지를 향해 천천히 손을 좌우로 흔든다. 윤지도 갑판의 난간에 붙어 서서 현우에게 손을 흔든다. 배는 서서히 안개 속에 묻히고 있다.
현우에게 문득 서도의 암반에서 빈사 상태로 나뒹굴던 왕잠자리가 떠오른다. 서풍을 타고 독도까지는 날아왔어도 울릉도로 되돌아가지 못하여 나뒹굴던 왕잠자리. 한 방울씩 생명의 샘물이 잦아들수록 기진하여 너털거리던 곤충의 날개. 안간힘을 썼어도 끝내는 돌아갈 길을 못 찾아 경련을 일으키다가 숨이 지던 왕잠자리. 왕잠자리를 떠올리며 현우는 생각에 잠긴다. 512년에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정벌하면서부터 우리 땅이 된 독도가 아닌가? 부디 안개더미를 쓸어버릴 해풍 같은 희망은 없을까? 당연한 우리의 영토임에도 일본이 시비를 거는 본질은 뭔가?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하여 업신여김을 받는 데도 커다란 원인이 있다고 현우에겐 생각된다. 현우에게는 수치스런 일을 없애는 지름길은 통일이라고 여겨진다. 그것도 외세에 의한 통일이 아닌 자주적인 힘에 의한 통일. 이것만이 독도를 온전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현우에게는 생각된다.
배가 안개 속에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이다. 부우웅 부우우웅! 뱃고동 소리가 두 번씩이나 길게 울린다. 왠지 뱃고동 소리가 한 맺힌 독도의 울음소리로 여겨지면서부터다. 현우는 떠나는 배를 향해 길길이 뛰며 포효를 한다.
“절대로 독도를 울려서는 안 돼! 어떤 경우에도 독도는 지켜야만 해!”
뱃전에서 윤지가 손수건을 꺼내며 울먹이는 모습이 안개 사이로 내비친다. 멀리서 현우와 윤지를 지켜보던 경찰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다도 슬픔에 잠겼음일까? 불타던 동도의 석양마저 땅거미로 스러지면서부터다. 잠잠하던 바닷물결마저 흐느끼는 듯 울부짖는 듯 길길이 치솟는다. 때를 맞추기나 한 듯. 수면을 눈발처럼 뒤덮던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바다 가득히 들끓는다.
<200자 원고 100매>
